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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미국 MLB 구단의 경제사정이 좋아진 이유

 

최근 다저스가 타임워너그룹과 맺은 25년 간 80억불 계약과 같이 미국 MLB 구단이 방송국과 거액의 계약을 맺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기존 중계권료의 10배가 넘습니다. 이런 뉴스를 보면 "미국이 호황인가"라는 착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불황이고 야구 인기도 서서히 내리고 있습니다. 또한 야구만이 아니라 TV 방송업계 전체가 내리막 길입니다. 하지만 중계권료는 10배 이상 올라갑니다. 게다가 다저스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구단에서. 왜일까요? 이런 상황은 미국의 방송 업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TV는 지상파 방송이 중심이지만 미국의 TV는 케이블TV가 중심입니다. 미국의 프로스포츠 팀은 지역 기반이라 케이블TV와 궁합이 좋아 70년대말부터 스포츠중계를 케이블의 지역채널에서 방송하는 게 정착돼 왔습니다. 다저스가 이전 계약을 맺었던 FOX스포츠는 각지의 지역 스포츠 방송국이 모인 1위 업체로 최근까지 MLB 중계를 거의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케이블TV 업계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라이벌 회사가 거액을 들여 폭스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중계권 획득 경쟁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중계권 경쟁이 격화된 이유는 스포츠중계의 상대적 지위가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선 광고 스킵 기능의 보급에 의해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의 광고 가치가 감소했습니다. 또한 주문형 프로그램 판매(VOD)의 확대에 의해 이러한 주문형 콘텐츠로는 TV에 시청자를 모을 수 없게 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광고를 스킵하지 못하고 실시간으로 시청되는 스포츠중계는 TV의 힘을 가장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로 재평가가 이뤄졌습니다. 스포츠중계는 사막이 되어 강과 호수가 말라붙은 가운데 마지막 남은, 이른바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입니다.

오아시스에 모이는 건 방송사만이 아닙니다. 로컬 케이블망이라는 저렴한 인프라를 통해 오아시스를 잘 아는 스포츠팀들이 스스로 방송사업에 나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2000년대에 시작돼 처음엔 양키스와 레드삭스와 같은 빅마켓의 인기구단만 했지만 머지않아 수익성이 높은 게 알려지자 팬이 적은 스몰마켓팀들도 구단 방송국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홈의 지역 인구가 300만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클리블랜드 같은 팀조차 자체 방송국을 만들어 자팀의 경기를 중심으로 다른 지역 스포츠에도 방송을 넓혀가며 착실히 사업을 늘리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프로 스포츠 팀은 방송사업이라는 새로운 사업의 개척과, 오아시스 효과에 의한 경쟁 과열에 의해 방송국과의 관계에서 '갑'의 위치를 차지하여 수익이 증대됐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프로 스포츠 팀은 미국과 같은 수익을 올리지 못합니다. 아직 방송 업계는 지상파의 독무대이며 케이블은 각종 규제에 막혀 있습니다. 따라서 지상파 방송국을 위협하는 신규 참여자는 기대할 수 없고 스포츠중게를 둘러싼 경쟁도 일어날 일이 없습니다.심하게 고정화된 지상파 TV를 핵으로 하는 미디어 구조가 벽이 되어 스포츠중계만이 아니라 콘텐츠산업 전반에 돈의 흐름을 막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분명 과열된 경쟁 상황이며 프로스포츠가 쇠퇴하면 언젠가 경영상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단에 들어온 돈은 유능한 인재를 데려와 전체 산업을 활성화시키며,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스포츠의 매력을 창조하는 토양을 기릅니다. 일부 지상파가 방송을 독점해 구태가 만연한 방송구조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에 비하면 착실하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이 벽을 부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는 시간이 흐른 후 TV 방송국과 같이 사망선고를 받게 될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