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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추위와 절망이 가득한 日피난소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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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이후 45만명 가량의 이재민이 파난 생활을 계속하고 여진의 공포와 강추위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만족스러운 식사도 없이 연료도 닿지 않는 피난소가 많아 가족이나 집을 잃은 사람들의 안색이 어둠이 드리우고 있다.

마을의 대부분이 괴멸한 미야기현 오나가와 마을. 오후 4시 반이 되자  2천여 명이 몸을 의지하는 마을 체육관에서 저녁 식사의 배급이 시작됐다. 이 날의 식사는 작은 크림빵에 푸성귀 잎만 든 된장국과 사츠마 튀김이다.

해일로 집을 잃은 아베(60)씨는 "빵은 힘이 나질 않아. 매실이 든 주먹밥을 먹고 싶구나"라며 혼잣말을 한다. 어린아이 4명을 거느린 스즈키(34)씨는 "나는 참아도 밤에 배고파 우는 아이들이 불쌍해서.."라며 한살배기 장남을 안는다.

이틀전만 해도 된장국만 배급됐다고 한다. 피난소에서는 식료만이 아니라 의약품, 화장실, 생리용품 등 모두가 부족하다. 몸만 피난하고 5일째를 맞으했지만 아직껏 갈아입을 옷이나 씻을 물이 없다.

전기가 끊어진 곳의 밤은 빠르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조속히 1인당 한 장씩만 배부된 모포를 덮고 마루에 눕는 사람이 많다. 히라츠카(40)씨는 "몸에 온기가 있을 때 잡니다. 밤은 추워서 잘 수 없으니"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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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중순이지만 추위는 심하다. 체육관 앞의 광장에서는 부서진 집의 잔해로 만든 모닥불에서 몸을 녹이는 사람이 동그랗게 모였다. 화제는 실종자의 안부나 장래의 불안. 전화는 연결되지 않고 정보원은 피난소에 1대만 있는 라디오에 불과하다. 기자가 고리에 참가하자 "휘발유는 언제 오나" "요코하마는 괜찮은지"등 질문이 쏟아졌다.

마을은 주택이나 동사무소는커녕 수산업과 같은 모든 것이 괴멸해 집도, 직장도 없는 현실이 덮친다. 한 남성은 "죽은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사는 것도 지옥이야"라며 한숨을 쉰다. 주민의 절반인 5천여 명이 연락이 되지 않으며 마을의 동쪽에 있는 오시카 반도에서는 1천여 명의 사체가 바닷가에 표류했다고. 가족이 무사한 사람들에겐 가끔 미소가 보이지만 소중한 사람의 안부를 모르는 사람은 무표정했다.

히라츠카(31)씨는 조부모를 잃었고 자택에서 발견된 사체는 아직도 수용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쓰나미가 덮치는 자택 지붕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 목격되었지만 그 후의 행방은 모른다. "마을을 떠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앞으로 지진이 또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으니.."

오후 9시경 차가운 비가 격렬해지자 자가발전으로 켠 비상 전등 아래 거의 모든 사람이 눕는다. 조금 쉬려고 계단에 앉자마자 여진의 땅울림이 일어났다. 여기저기서 일어난 사람들은 흔들림이 잦아들자 아무말 없이 다시 눕는다.


피난소는 깨진 유리창의 틈새로 바람이 새어 도저히 잘 수 없는 상황. 어느덧 밖에는 눈이 내린다. 1대만 있는 석유 스토브의 주위에 다시 고리를 만든다. 다리가 불편한 한 여성(75)은 "정말 잠도 못 자. 이제 죽고 싶은데 이런 다리로는 죽기도 힘들다"며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먼 곳에서 동이 트자 체육관의 주위는 희미한 설경이 되어 있었다. 다시 모닥불이 시작되자 일어난 사람들이 모인다. "가족은 괜찮았어?""전화는 아직 불통인 것 같다" 사람들의 화제는 같다. 현실과 마주보는 하루가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