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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베를린의 美대사관은 '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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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미국의 독립 기념일에 맞춰 정식 오픈한 베를린의 미국 대사관의 외관에 쓰디
쓴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전통적인 건조물이 주위에 나란히 서는 만큼, 테러 대책
을 중시한 근대적인 건물에 '요새', '형무소' 등의 별명이 붙여지고 있다.


美대사관은, 동서 독일 통일의 상징, 브란덴브루크문의 바로 남쪽에 위치하며 가까운 곳에는 히틀러 시대에 제국 의회였던 독일 연방 의회도 있다. 이러한 지역에서 미국 대사관은 따분한 외관을 가진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폭탄 대책용의 특수 유리가 사용되어 벽에도 강도가 높은 재료가 이용되는 등 철저한 치안 대책이 취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1998년의 케냐,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의 폭탄 사건으로 약 260명이 사망한 것도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독일 미디어나 건축 관계자의 평가는 쓴 편이다. 건축 평론가인 트렌씨는 "미국 중서부의 건물로서는 좋을지도 모르지만 '낡은 유럽'의 수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럼스펠드 前 미 국방장관의 유
명한 불평을 인용해 혹평했다.독일지 슈피겔도 "(평온인) 베를린이 아
니고 바그다드에 있는 건물"이라고 평가했다.

치안 대책에 골몰하면서 주위의 경관과의 조화에도 배려해야 하는 건축가의 갈등에
동정하는 소리도 있지만 독일지 베를리너차이퉁은 "지하호(와 같이 튼튼한 건축물)
를 지상에 올려 요새와 같은 외관을 일반적인 양상으로 변신시키는 것이 건축가의
사명이다. (대사관을 만든) 건축가들은(현실과의) 싸움에 졌던 것"이라고 논했다.


*미국 대사관은 1941년 나치스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하여 국교가 단절됐기 때문
에 브란덴부르크문의 동쪽 '파리 광장'의 일각부터 철수하게 되었다. 전후 철거지는
동독의 관리하에서 베를린 장벽의 일부가 되고 있었지만, 1990년 동서 독일 통일을
기회로 대사관저의 복귀 구상이 부상했다. 올해 7월 4일 67년여만에 베를린의 원래
자리를 되찾았다.